업무 이야기/브랜드 키우기 기획 log

회사 밖에서 나 혼자 브랜드를 키우기 시작한 이유

황에이미 2021. 1. 16. 14:45

나는 법무법인에서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고, 딱히 무슨일이 있는 게 아닌한은, 앞으로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것이라 생각한다. 법무법인과 마케팅이라는 것은 ㅎㅎ

 

나는 법전공을 했고, 뒤늦게 마케팅 쪽에 관심을 갖게 돼서, 온갖 계약직과 인턴을 거쳐, 가까스로 겨우겨우 소비재 쪽에 안착했으나, 극악무도한 업무량과 기계같은 일처리, 매일 살얼음판 걷는 것 같은 분위기, 실무자로서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회의감(그냥 전달자1이었음).... 등등을 느껴 이직을 알아보던 중, 운명처럼 로펌들이 광고를 엄청 한다는 걸 알게됐고, 나는 전공도 법 전공이니까 괜찮을거야! 생각해서 이직을 결심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 때만 해도 로펌 마케팅은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었고, 지금보다도 더 생소한 분야였으며, 당시의 나는 서른을 목전에 앞둔, 경력관리가 필요한 사원급이었다. 잘못하면 내 커리어가 고꾸라질 수도 있으며, 다시는 소비재 쪽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안고.. 몇 날 며칠 신중하게 고민해서 했던 선택이었다.)

 

당시 이직할 때가 2018년 여름쯤이었고, 그 때만 해도 법무법인 마케팅, 법무법인 광고 시장에서 굉~~장히 대행사들이 꿀빨던 시기였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공장형 블로그 포스팅들이 양산되었고, 검색광고 관리 수준도 형편없었으며,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지금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어려웠던 수준..

 

암튼, 나도 2년정도 척박한 환경에서 일했다. '내가 원하는 게 대체 뭐였지..?'를 매일 되새기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건가?' 따위의 답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또 하면서.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업무 루틴이 생기고 안정을 찾고, 적응될 때 쯔음. 내 인생에 재밌는 일이 생겼는데, 바로 우리회사 주임님과 탕비실에서 나눴던 사소한 대화가 발단이었다. 그 때 같이 생활습관에 대한 얘길 하다가, '우리 둘이 같이 습관만들기 해볼래요?' 로 이어졌고. 우린 매일 저녁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활습관은 어떤지 기록들을 카톡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20대의 상큼한 주임님이 귀여워서 대화를 캡쳐해, 개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재밌다, 귀엽다, 응원한다, 등의 반응이 있었고, 놀라웠던 건 나와 일면식도 없고, 한 마디 말도 안해본 사람들이 기꺼이 내게 잘 보고 있다며,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스타그램 친구 중 한 분이 함께 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 분까지해서 총 3명이서 진행하게 됐고, 대화는 조금씩 더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생겨서 업로드를 했는데, 나도 함께 하고싶다, 새로운 멤버는 안구하냐는 디엠이 와서 엇? 키워볼까? 싶어 판을 벌렸다.

 

처음에 참여 모집 글을 올리자, 한 두 시간만에 20명인가? 관심있다고 했고 나는 순간 무서워서 글을 바로 내렸다;;; 더 많이 모집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다듬고, 관심 보여주신 그 20분 중 열 몇 분과 함께 모임을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만큼 관리는 어려웠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더 생겼고,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며 지켜보기 시작했고, 본인도 참여하고 싶다, 참여 모집은 언제하냐는 디엠이 하루에 한 개씩 왔다.

 

사설이 길었다.

 

우리 모임은 내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동시에 흥분을 주었고, 동시에 이걸 브랜드로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내가 회사 밖에서도 경쟁력 있는 마케터일까? 회사없이 나 혼자서도 마케팅 일을 할 수 있을까? 회사 밖에서 겪는 마케팅 관련 일들이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 혼자 브랜드를 키워보는 일이, 내 인생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 속에 계속 떠올랐다.

 

나는 과연 회사의 업무 시스템과, 회사의 인적 자원과, 회사의 자금력과, 회사 차원의 판단과 결심, 영향이 없이도, 마케터로 기능할 수 있을까? 이게 제일 궁금했다.

 

그렇게, 회사 밖에서 이 모임을 나만의 브랜드로 차츰 키우기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발단 끝.